黑龙江日报朝文版
国内统一刊号: CN23-0019  邮发代号: 13-26

교육

  • 세상에서 엄마가 좋아 엄마를 가진 아이는 보배 같아요 ... ... 나는 매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노래 가사를 “세상에서 공산당이 좋아 / 공산당이 있기에 우리는 보배 같아요”라고 고치고 싶다. 우리가 지금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고 배움의 전당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위대한 중국공산당의 정확한 령도하에 혁명선렬들과 혁명자들이 고생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영용하게 싸워 제국주의 침략자를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하였기 때문이다. 새중국이 창건된 후 중국공산당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라는 탄탄대로를 성공적으로 개척하여 락후하고 빈궁하던 우리 나라를 부강하고 현대과학기술이 발달한 강국으로 건설하여 세계의 동방에 우뚝 서게 하였다. 상아5호 화성탐측기와 신주12호 우주비행선의 성공적인 발사, 장강삼협수력발전소와 청장철도의 건설, 2008년 북경올림픽운동회의 성공적인 주최, 모바일 결제와 전자상거래 등 신화와 같은 기적들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지금 전 지구촌이 코로나19로 하여 몸살을 앓고 있을 때 14억 인민들은 중국공산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동심협력하여 싸워 코로나19와의 무연의 전쟁에서 거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는 시름을 놓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농민, 로동자, 과학자들은 자기의 일터에서 힘과 재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명절이면 명승고적에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여러가지 운동회, 축제들에 팬들이 참가하여 즐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중국공산당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 때문이고 위대한 중국인민들이 지혜를 모아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중화민족의 대가정에서 근심걱정이란 무엇인지 모르고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는 중화민족의 일원인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을 열애하며 절대 당의 은덕을 잊지 말고 오늘의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과학문화지식을 열심히 배워야 한다. 기초를 잘 닦아 앞으로 나라와 인민이 수요할 때 자신의 지혜와 지식을 바칠 수 있는 나라의 기둥감으로 자라나야 한다.
  •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기를 기원하는 2022년을 바라보다나니 곧 끝나갈 2021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이 제일 인상에 남는지? 왜서일가? 지난 일년동안의 순간들을 돌이켜보니 나와 희로애락을 같이 하면서 항상 나의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들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 나를 키워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나를 이 세상에 오게 하여주신 부모님, 그리고 항상 나에게 용기를 준 친구들입니다.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이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너무나 간단한 한마디 말이지만 왜서 인사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게 할가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알고 있는 것은 이 간단한 한마디가 사람의 기분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뿐입니다. 친구들은 늘 함께 생활하는 부모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해본적이 있는지요? 사실 부모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늘 부모님을 화나게 하지요. 길 건널때 차 조심하라,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 잘 들어라, 편식하지 말라... 당부를 할 때면 우리는 잔소리를 한다며 짜증을 내지요. 이 모든 것은 우리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지요. 지난날 부모님을 화나게 했던 자신이 정말로 부끄럽고 후회됩니다. 그리고 2년이나 지속된 코로나 사태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다나니 부모님의 수고와 사랑을 더 깊이 느끼게 되였습니다.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였지만 나를 위하여 언제나 밝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한해에는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가요?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은 무궁무진합니다. 곧 맞이하게 될 2022년 한해를 우리 모두가 “감사합니다!” 이 한마디로 채워나가는 것은 어떨가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곧 행복이고 희망입니다.
  •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의 전통명절 설날이다. 금년은 또 임인년 호랑이해라 범띠인 나에게는 특별한 한해이다. 해마다 나는 설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매년 설날이 되면 갖고 싶었던 물건을 요구하면 엄마는 평소에 안 사주던 게임기나 인형도 서슴없이 사주군 한다. 또 한국에 계신 아빠도 선물을 한아름 들고 돌아온다. 설날 아침에 한복을 이쁘게 차려입고 세배를 드리면 할머니는 세배돈도 두둑이 주어 내 주머니도 불룩해져 기분도 짱이다. 그런데 이번 설날은 갖고 싶은 게임기나 인형보다 더 간절한 소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얄미운 코로나19가 없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설날이여야 듬뿍 받을 수 있던 아빠 사랑도 받을 수가 없어서 너무 속상하다. 어머니는 범띠해인 올해는 모든 액운을 몰아가라고 게임기나 인형 대신 나에게 빨간 팬티와 빨간 양말을 사주었다. 임인년 올해는 나에게 있어서 아주 뜻깊은 한해인데 할머니가 주는 세배돈으로는 무엇을 하면 좋을가? 코로나시대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마스크를 사서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올해는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하루 빨리 코로나19를 퇴치하여 우리의 생활이 정상화 되였으면 좋겠다.
  • 기다리고 기다리던 범때해가 왔다. 올해 범띠인 나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아빠의 병이 빨리 낫게 해달라고… 나에게는 키도 훤칠하고 멋지게 생기고 자상한 아빠가 있다. 그런 아빠가 갑자기 병으르 쓰러졌다. 2019년 6월 9일 저녁, 엄마의 핸드폰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렸다. 한창 저녁을 들던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가서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데 엄마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나와 오빠는 저녁을 먹다말고 엄마만 바라보았다. 아빠가 배에서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청천병력같은 소식을 듣고 나와 오빠의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듯 쏟아졌다. 중풍이 얼마나 심한 병인지 나중에야 알았지만… 엄마도 말을 잇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게 웬 일인가요? 그렇게도 건강하시던 아빠가… 나는 두주일 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오빠랑 같이 병원에서 아빠를 만났다.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떨리는 심정으로 병실에 들어갔다. 병상에 누워 있던 아빠는 우리를 보더니 팔로 손짓하며 빨리 오라고 하였다. 나와 오빠는 나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아빠한데로 다가갔다. 그런데 아빠가 이상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오른쪽 손을 쓰지 않고 왼손으로 우리를 자신의 옆에 앉으라고 하였다. 그제서야 나는 아빠가 얼마나 몹쓸 병에 걸린 줄 알았다. 병원에 입원한지 얼마 안지나 아빠는 엄마의 부축임을 받아 한발자국씩 걸어다니기 시작하더니 한달이 좀 지나자 자기절로 화장실도 다니게 되였다. 그런데 오른쪽팔은 차도가 안보였다. 넉달 후 의사선생님은 앞으로 말은 괜찮아질 수 있는데 오른쪽팔은 후유증으로 영원히 못쓸 수 있다고 하면서 외국에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참으로 다행이라고 말하니다.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지 2년이 훨씬 넘었지만 오른쪽팔은 아직도 아예 쓰지도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자 밖에 나가 매일 오전 오후 두번 산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범띠생이 임인년에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고 누구한테서 들었던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꼭 믿고 싶다. 올해에는 꼭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아빠의 병이 꼭 나아지기를…
  • 2022년 임인년 범띠해가 되였다. 범띠인 나에게 특별한 한해가 되기를 소망하며 새해 첫 일출을 보러 산으로 올라갔다. 이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해 작은 소망을 빌어본다. “멋진 축구화를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게 해주세요.” 나의 소망을 말하자면 어느 날 세계 유명한 축구스타의 팬이 되면서부터이다. 이제서야 축구에 재미를 붙히고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하게 된 나는 지금도 열심히 푸른 잔디 우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그런데 요즘 훌쩍 커져버린 발 사이즈 때문에 산지 얼마 안되는 축구화가 너무 빨리 작아져서 고민이다. 매일마다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비싼 축구화를 자주 사달라기는 미안하고 그래서 생각해본 것이 바로 이번 설날 받을 세배돈이다. 이번 세배돈을 모아 꼭 사고 싶었던 축구화를 살련다. 그리고 멋진 축구화를 신고 미래의 축구스타 꿈을 향해 힘껏 달려보고 싶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회고하며 저마다 야심찬 계획과 간절한 소망을 담아 2022년 범띠해에는 호랑이처럼 기운 넘치는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 내가 어렸을 때 가족 형편은 썩 좋은 편이 아니였습니다.주변 사람들은 자주 우리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옛날의 그 일만 아니였으면 이 정도로 안 됐을텐데… 나는 어려서는 못 알아 들었지만 점점 크면서 필림이 하나하나씩 이어졌습니다. 저는 외동 아들인줄 알았지만 후에 알아보니 사실 저한테 큰 형이 한명 있었습니다. 나는 고민을 했습니다. “왜 엄마, 아빠는 나에게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안 알려주는 걸까?” 몇달동안 고민끝에 부모한테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아빠 왜 나한테 친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안 알려줬어? ”엄마아빠는 당황한 표정으로 저에게 알려줬습니다. “사실 그 형은 지금 감옥에 있어…”나는 이 말을 듣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부모의 말을 계속 들었습니다.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리해가기도 하고 부모가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들게 되였습니다. 몇년 지난 후 나는 우연하게 부모가 전화하는 걸 엿듣게 되였습니다.원래 래일이면 저의 형이 감옥에서 나오는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니는 못들은 척 하면서 계속 게임을 놀았습니다.며칠 후 부모는 나를 시골에 있는 집에 데리고 가셨습니다.집안에 들어갔을 때 난생 처음으로 보는 사람이 우리집에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엄마,아빠는 저에게 이렇게 알려주셨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너의 친형이다.” 이 소리는 나에게 너무 생각밖의 일이였습니다.방은 몇달동안 안 닦았는지 먼지가 가득했고 형의 몸은 몇달 동안 안 씻은 것 처럼 때가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부모는 형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은 한달만 줄게.한달 후 돌아왔을 때 내 눈에 네가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는 나를 데리고 차를 탔습니다.나는 몇메터 안 가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핑게로 가만히 형한테 찾아갔습니다. 나는 나한테 있는 ‘전 재산’을 형 한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난 형을 믿어 이 돈은 형이 불쌍해서 주는게 아니여. “난 형이 이 돈으로 힘을 내서 가족 품으로 돌아 왔으면 해.”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다가 얼굴에 미소같은 것을 약간 피워 올렸습니다.이 말을 다 하고 나는 재빨리 뛰여서 차안에 탔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부모한테 알려줬습니다.아빠는 나에게 화내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왜 그 불량배한테 돈을 줘? 우리 가족도 잘 못 살아!” 나는 이 말에 말문이 막혀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집에 가는 동안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말 한 마디도 안하였습니다.형에 대한 엄마, 아빠의 태도는 아주 랭랭했으나 나는 그래도 형이 집에 돌아와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생기게 되였습니다. 아마 이런 것이 혈육의 정이겠죠?
  •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효심이다. 우리는 응당 효심을 가져야한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는 효심이 점점 살아지고 있다. 나는 어제 문뜩 휴대폰에서 이런 뉴스를 보게 되였다. 한 가정에 자식이 넷이나 되는데 늙은 어머니를 모시기가 싫어 자식들이 서로 책임을 떠밀었다. 장남이 말했다. “둘째야 엄마가 너를 제일 좋아했는데 니가 모셔라.”그 말을 들은 둘째는 기가 막혀 목청을 높혀 말했다. “이 집에서 내가 둘째로 태여나서 온갖 궂은 일은 다 내가 했었지 형은 장남이라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내가 중간에서 고생만 했잖아, 이제와서 내가 제일 이쁨을 받았다니 어머니는 형과 동생들이 응당 모셔야해! ” 이말을 들은 동생들과 형은 둘째와 말다툼을 하였다. 어머님은 눈치가 보이는지 말없이 자리를 비우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하였다. 산책하다가 어머님은 그만 사고나서 병원에 실려가는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이 뉴스를 본 나는 너무 화가 치밀어올라 욕이 막 나왔다. 그러던 그때 나의 어머님은 문을 열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점심 뭐 먹겠니? 엄마 장볼러 갈건데 …” 나는 귀찮은 듯 말했다. “엄마 알아서 해. 마음드는 대로 사. ”엄마는 내가 이런 말투로 말하자 섭섭했는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한창 내가 게임을 놀면서 심정이 좋을 때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물건이 너무 많아서 내려와 물건 들어줄 수 없겠니? ” 나는 버럭 화를 냈다. “아니 물건 그렇게 많이 사서 뭐해? 나 또 내려가야 해? ”그러자 엄마는 더는 못참는다는듯이 전화를 팍 끊었다. 나는 한참 곰곰히 생각하였다. 나는 내가 점점 그 뉴스속의 자식들처럼 되는것 같았다. 나는 미안함이 스밀스밀 올랐다. 그래서 재빨리 옷을 입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때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엄마! ”라고 부르면서 엄마 물건을 곁들었다. 그러자 그늘졌던 엄마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부모는 우리를 낳아주고 어려서부터 길러주셨는데 우리는 부모가 늙어서 눈감을 때까지만 모시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부모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지만 우리는 부모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가? 우리는 효심을 잃어서는 아니된다. 효심은 사람이 이 사회에 살아가는데 기본이다. 자기부모도 아낄줄 모르고 효도할줄 모르면 어찌 다른 사람을 잘 대하겠는가. 우리 모두 효심을 잃지 말자.
  • 우리는 평시 생활에서 작은 물건하나로 인해서 기분을 잡치거나 행복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기실 행복에 대한 느낌은 어떤 물건이나 어떤 일의 크기와 작기 혹은 중요함과 관계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엄마, 아빠가 한국에 가시고 나와 동생이 외삼촌 집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동생에게는 그가 가장 아끼는 분홍색 토끼인형이 있었습니다. 동생은 그 토끼인형을 잘 때도 밥먹을 때도 손에서 놓지 않고 애지중지 여겼습니다. 꼭 손을 깨끗이 씻은 후에야 토끼인형을 잡았으며 그 누구도 인형을 닿지게도 못했습니다. 한번은 내가 토끼인형을 가지고 놀려고 다쳤댔는데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바람에 기겁을 하여 원래의 자리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도 동생은 한주일동안이나 나와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나는 그 토끼인형을 만지지도 못했습니다. 그 날은 나의 생일이였습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내가 생일이라고 맛있는 과일과 음식을 가득 마련해 주고 또 맛있고도 화려한 케이크까지 사줬지만 나는 그냥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기분이 울적해졌습니다. 이때 동생이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자기가 가장 아끼는 분홍색 토끼 인형을 나에게 주는 것이였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차 깜짝 놀라서 “아니, 이건 네가 제일 아끼는 토끼인형이 아니야?” 하고 물었습니다. 동생은 웃으면서 “언니생일인데 이것을 언니가 가져.” 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너무도 감동되여 코끝이 찡해 났습니다. 그리고 울쩍하던 기분도 어느새 없어졌습니다. 나는 동생을 다시 보았습니다. 얘가 정말 철없던 내 동생이 맞단 말인가? 나는 내 동생이 더없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그 다음날 학교가기 전에 나는 분홍색 토끼인형을 포장지에 잘 싸서 동생의 가방에 넣어주었습니다. 아무리 내 생일이라 해도 동생이 제일 아끼는 토끼인형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동생의 고마운 마음만 받았습니다. 나는 동생의 선량하고 깊은 속마음을 마음속으로 감탄하였습니다. 이 사소한 사실과 사소한 물건이 진정 나를 감동케 하였습니다.
  • 삶은 때로 맹물 한 잔과 같이 싱겁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심하게 관찰하기만 하면 사실 그속에도 풍부한 여러가지 맛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쓰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섬세하게 체험한다면 평범한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아래층 내가 매일 지나는 공원에 아름다운 작은 화단 하나가 있습니다. 그 속에는 각양각색의 꽃이 아름답게 피였습니다. 벚꽃, 월계, 동백꽃 등등의 꽃이 있습니다. 활짝 핀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운 꽃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매번 주말이 되면 공원에 놀러오는 사람이 특히 많아 매우 시글벅적합니다. 이 곳에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꽃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신체단련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고 련못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언니 오빠들도 있으며 잔디밭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의 생활이 있고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활에는 또 시련과 성장도 동반되여 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한가로이 거닐다가 잔디밭으로 가려고하는데 한 남자아이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남자아이를 도와주려고 할 때 그 애의 할머니가 나를 제지하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일어나라.” 고 남자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옆에서 의아한 표정으로 이 장면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남자애가 울며불며 일어서지 않겠다고 떼를 썼는데 그의 할머니가 계속 격려하니 그 남자애는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가 그 어린아이에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해결하는 법을 터득하라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인생이란 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스스로 노력하며 성장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원의 아늑한 모습을 보니 남녀로소 누구나 행복한 웃음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억지로 새긴 흔적도 없이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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