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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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라이프

  • 술을 마시고 가장 빠르게 나타나는 증상은 대부분 '뇌'와 관련된다. 뇌에 이상이 생겨 손가락에 힘이 빠져 수저를 놓치고 운동 신경 저하로 휘청거리고 기억력이 떨어져서 했던 말을 반복하고 술 마신 날 상황을 아예 까먹는 단기 기억상실을 겪기도 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인 뇌, 탄탄한 보호 시스템이 작용할 텐데 왜 뇌는 특히 술에 쉽게 굴복하는 걸가? 뇌에는 이물질 침입을 막는 방어 세포벽인 '혈뇌장벽(血腦障壁)'이 있다. 이 덕분에 뇌가 예민한 장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유해 물질에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알콜은 혈뇌장벽을 손쉽게 통과해 빠르게 뇌로 들어간다. 알콜은 뇌세포를 파괴하고 뇌 기능을 일시적으로 둔하게 만들어 다양한 이상 증상을 유발한다. 알콜을 많이 마실수록 뇌 기능이 둔해지는 정도가 심해진다. 중독돼서 뇌세포 파괴가 심각해지면 기억장애나 알콜성 치매 등이 유발된다.
  • 담배에 대한 의존성을 일으키는 물질은 니코틴입니다. 니코틴 외에 알코올‧마약 등 중독을 일으키는 모든 물질의 기전에는 뇌 보상회로가 작용하죠.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들은 이 보상회로를 활성화시켜 물질 추구와 갈망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긍정적인 보상 또는 강화시스템으로 자극되면 행동의 반복을 하게 되는 것이죠. 담배를 피우면 흡인된 니코틴의 약 25%가 혈액으로 흡수됩니다. 대뇌에 도달하는 속도는 15초 이내에 달합니다. 니코틴은 앞서 얘기한 보상회로의 도파민 경로를 활성화하여 강력한 긍정적 강화와 중독을 유발합니다. 니코틴의 반감기는 약 두 시간입니다. 두 시간 이상이 지나면 니코틴 농도가 떨어져서 다시 흡연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니코틴 의존자의 경우 흡연 후 약 90분에서 120분이 지나면 금단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요. 24시간에서 48시간이 지나면 금단증상이 최고조에 이릅니다. 금단증상은 길게는 수주에서 수개월까지 지속할 수 있습니다.
  • 최근, 박연희 의 수필집 ‘낯섦, 그 너머로’가 ‘도서출판 바닷바람'에 의해 출간됐다. 박연희 수필가는 일찍 연길시 텔레비전방송국에서 편집기자로 활동을 해왔고, 한국에 체류하면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쳐왔다. 조선족을 한국에 알리고 한국 사회를 조선족에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문: ‘낯섦, 그 너머로’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수필집에는 그동안 모국에서 활동해온 려정이 잘 녹아있습니다. 어떻게 제목도 ‘낯섦, 그 너머로’로 달았는지? 박연희: 네, 한국은 비록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모국이라고 하지만 국가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입국해서 보니 언어, 표달, 생각, 행위방식들이 모두 낯설었습니다. 그 ‘낯섦’은 객관 현실이고, 그것을 리해하고 받아들이고 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 적응할 수가 없고, 일을 진행할 수가 없지요. 그것은 중국동포라면 누구나 겪는 도전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낯섦에 감사하고, 낯섦 그 너머에 더욱 나은 우리들의 미래가 펼쳐져 있게 되지요.
  • 연변조선족전통문화발전연구회 초대회장으로 추대된 연길연성뚝배기유한회사 대표 허향순은 “향후 사회각계의 지명인사, 문화인(문학인) 그리고 회원들과 함께 조선족전통문화발전에 관한 리론연구과 민족전통문화방면의 유익한 문화활동을 참답게 전개하면서 민족문화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펼칠 것이다.”고 말했다. 연변사회과학계련합회 방수원 주석. 연변사회과학계련합회 주석 방수원은 축사에서 “연변조선족전통문화발전연구회의 설립은 우리의 문화생활을 더 활기롭게 가꾸고 문화발전을 촉진하는 문화계의 또 하나의 경사”라며 “연변조선족전통문화발전연구회가 향후 더 다채로운 문화활동을 펼치고 더 열정적인 창작활동과 연구활동을 전개하여 중국조선족사회에 더 훌륭한 문화적 업적을 쌓아올리라 믿어마지 않는다.”고 하였다.
  • 마흔에 둘째를 낳아 3년을 키워보니 어느덧 둘째가 생후 40개월이다. 첫째와 둘째는 5살 차이다. 하나는 말귀를 다 알아듣는 학령기, 하나는 말귀 대부분을 못알아듣는 꼬물이, 이 둘을 키운 둘째 육아 시간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마흔에 둘째를 낳아 40개월을 키워본 저질체력 마흔엄마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두 아이를 키울 때 처음에는 따로따로 아이를 키웠다. 첫째를 키우던 관성이 있어서 둘이 같이 뭘 한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있었다. 나는 하나인데 어떻게 둘을 따로 대하는가? 이 근본적인 모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같이 놀 수 있는 놀이를 했다. 첫째가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다면 학원이나 방과후 수업의 도움을 받았다. 방문학습도 도움이 됐다. 첫째가 학교에 가면 둘째와 할 수 있는 놀이를 했다.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화끈하게 놀아준다. 며칠전에는 류통기한 지난 밀가루가 있길래 발코니에서 밀가루놀이를 했다. 놀이부터 뒤처리까지 진짜 손도 많이 가고 평소에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놀이다. 아이가 자꾸 화분의 흙을 파길래 차라리 밀가루가 나을 것 같아서 해봤다. 아이가 너무 좋아했다. 이럴 때는 그냥 “에라이 청소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면서 내버려둔다. 다 논 다음에는 목욕을 했다. 목욕하면서 지저분한 통을 한꺼번에 씻어버리니 완전 편했다.
  • 12월 25일 저녁, 제16회 중국장춘영화제 페막식 및 시상식이 장춘시에서 거행되였다. 중국 영화계의 허다한 제작, 감독, 배우, 전문가,학자 등 신구 력량 대표들과 장춘시의 광범한 영화팬들이 함께 5일 동안 펼쳐진 다채로운 영화축제를 응원했다. 이날 있은 시상식에서 영화 '장진호'가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 안았고 영화 '섬을 지키는 사람', '중국 의사'가 심사위원회 대상을 수상했다. 최우수감독으로는 '나의 누나'의 은약흔감독이 수상하고 최우수남자주연상은 '섬을 지키는 사람'을 열연한 저명한 배우 류엽, 최우수녀자주연상은 '나의 누나'를 열연한 장자풍이 수상했다. 중앙라디오텔레비죤방송총국, 길림성정부에서 주최하고 장춘시정부가 주관한 제16회 중국장춘영화축제는 12월 21일부터 25일까지 장춘시에서 펼쳐졌다. 올해부터 2년에 1회 열리던데로부터 매년 열리는 축제로 바뀐 중국장춘영화제는 총 133편의 출품작을 공모해 초심을 거친 뒤 16편의 우수작을 ‘금록상'에 선정했다.
  • 천진경기(京基)정음우리말학교(교장:정향란) 종강식 및 천진시조선족교육사랑회 '우리 말, 우리 글 사랑' 장학금 수여식이 12월 26일 천진시 백세시대문화센터(대표:우봉금)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였다. 행사에는 천진경기정음우리말학교 학생과 학부모들과 래빈 70여 명이 참석하였다. 천진시조선족련의회 리태운 회장, 천진시조선족진남구상회 안경철 회장, 천진조선족녀성협회 김화 회장과 주홍매 부회장, 천진시조선족련의회 정춘란 비서장, 천진시조선족교육사랑회 임국강 비서장, 리계화 부위원장, 김화영 위원, 천진시백세시대문화센터 우봉금 사장, 천진시조선족련의회 리영호 부비서장 등 우리 민족의 교육과 문화 부흥에 힘쓰고 있는 주요 래빈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번 행사는 1부 종강식, 2부 천진시조선족교육사랑회 '우리 말, 우리 글 사랑' 장학금 수여식, 3부 종강식 공연 순서로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가을학기를 마무리하며 학부모와 래빈들에게 천진경기정음우리말학교 한학기 동안의 수업 내용을 소개하였다. 올해 가을 천진시 백세시대 문화센터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린 천진경기정음우리말학교는 한글 교육 외에도 전통 무용, 사물놀이, 민속 문화 체험 등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천진 조선족 학생들에게 폭넓은 교육과 민족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12월 25일 오후 15시,2022 중앙대가 빙설환락쇼가 서막을 열었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배우들이 중앙대가와 서11도가 교차구에서 출발했다. 반짝거리는 빙설 왕관, 빙설세계를 방불케 하는 하얀 바탕에 푸른 무늬가 돋친 긴 치마, 오색찬연한 지팡이... 시민들에게 동화 속과 같은 아름다운 세계를 선물했다. 중앙대가에서 발레무 '백조의 호수'가 펼쳐지고 있다. 오후 4시, 중앙대가에서 '캉캉무' 공연이 펼쳐졌다.
  • 장춘에 살면서 금년에 흑룡강신문을 주문하려고 우편배달부와 말하니 조문판이 없다며 주문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할수없이 신문사와 련계하니 우편간행물 일련번호로 주문하면 된다고 해서 다시 배달부와 말했는데 목록에 조문판이 없기 때문에 안된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위챗으로 주문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어서 젊은 사람의 손을 빌어서 주문을 마쳤습니다. 나는 50여년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타향에서도 계속 신문을 청해보고 있습니다. 고향 신문은 나의 인생의 길동무이자 친구와도 같이 언녕 두터운 정을 쌓았습니다. 한해는 고향 려명촌에서 신문을 청했는데 북경으로 이사가는 바람에 일년동안 신문을 보지 못했습니다. 신문이 없으니 안달아났습니다. 이듬해 북경에서 신문을 청했습니다. 여기는 늦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번은 시장을 가는 길에 혹시나 해서 우편함을 열어보니 글쎄 세장이나 왔더군요. 생각보다 이렇게 빨리 올줄은 생각지 못했지요. 나는 시장도 가지 않고 집에 올라와 신문을 읽었습니다. 고향 신문을 받아보는 그때 그 기쁜 심정을 말로 표현할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 심정을 인차 글로 써서 신문사에 보냈더니 얼마 안돼 글이 신문에 올랐습니다. 문장 하나 제대로 써본적 없는 인간의 글을 실어주니 얼마나 기쁘던지 말로 이루다 형언할수 없었습니다. 그후로 용기가 생겨 몇편 더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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