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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체력 마흔 엄마는 이렇게 둘째를 키웠다

2021-12-30 14:19:04

마흔에 둘째를 낳아 3년을 키워보니 어느덧 둘째가 생후 40개월이다.

첫째와 둘째는 5살 차이다. 하나는 말귀를 다 알아듣는 학령기, 하나는 말귀 대부분을 못알아듣는 꼬물이, 이 둘을 키운 둘째 육아 시간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마흔에 둘째를 낳아 40개월을 키워본 저질체력 마흔엄마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1. 다같이 놀 방법을 생각했다

두 아이를 키울 때 처음에는 따로따로 아이를 키웠다. 첫째를 키우던 관성이 있어서 둘이 같이 뭘 한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있었다. 나는 하나인데 어떻게 둘을 따로 대하는가? 이 근본적인 모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같이 놀 수 있는 놀이를 했다. 첫째가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다면 학원이나 방과후 수업의 도움을 받았다. 방문학습도 도움이 됐다.

첫째가 학교에 가면 둘째와 할 수 있는 놀이를 했다.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화끈하게 놀아준다. 며칠전에는 류통기한 지난 밀가루가 있길래 발코니에서 밀가루놀이를 했다.

놀이부터 뒤처리까지 진짜 손도 많이 가고 평소에는 엄두를 낼 수 없는 놀이다. 아이가 자꾸 화분의 흙을 파길래 차라리 밀가루가 나을 것 같아서 해봤다. 아이가 너무 좋아했다. 이럴 때는 그냥 “에라이 청소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면서 내버려둔다. 다 논 다음에는 목욕을 했다. 목욕하면서 지저분한 통을 한꺼번에 씻어버리니 완전 편했다.

아이들과 집안일도 같이 했다. 첫째 키울 때는 따로 하는 편이였다. 그런데 둘째를 키우니 정말 시간이 없었다. 완전 부족하다. 시간 파는 사람이 있다면 목돈을 빌려서라도 사고 싶은 심정이다.

둘째 육아에서는 그냥 다같이 한다. 멸치똥도 같이 까고 콩깍지도 같이 벗기고 마늘도 까고 재료도 썬다. 어쩔 수 없다. 이게 최선이다. 이렇게 하니 아이들도 의외로 좋아했다. 같이 하자고 할 필요없이 그냥 옆에서 내가 먼저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다가온다. 그럴 때 쓱 주면 된다.

이유식 시작했을 때는 이유식 재료에 간을 해서 첫째에게도 같이 먹였다. 이렇게 했더니 이유식 시기가 금방 끝난 기분이다. 첫째 때는 엄청 길게 느껴졌는데.

장난감도 언니 것을 같이 가지고 논다. 둘째 장난감은 새로 산 것이 거의 없다. 어쩌다가 사줘도 언니 거를 더 좋아한다.

공부도 같이 한다. 시발점은 우연이였다. 첫째는 학교 입학할 때부터 온라인 수업이였다. 첫째가 방에서 수업을 듣는 동안 둘째와 나는 거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둘째가 첫째 방으로 뛰여들어갔다. 별안간 벌어진 일이였다. 난감해하며 아이를 끌어내려는데 첫째가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이였다. 혼자서 수업하는 게 지루하고 졸리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수업 때는 화면에 안 보이도록 방바닥에 앉아서 구경을 하고 학습지 태블릿을 할 때는 동생과 같이 공부했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습득력이 더 높아지는 걸 느꼈다. 순전히 내 느낌이지만 말이다.

노는 건 항상 2인분이다. 나이 많은 엄마 아빠는 허리가 휜다. 덕분에 체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영양제도 챙겨먹고 운동을 하려고 노력중이다. 솔직히 체력만 된다면 육아의 절반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체력이 안된다는 게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서 노는 게 제일 좋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부모도 수고를 덜 수 있다. 놀이터에 아무도 없어도 둘이서 놀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동생이 걷고 말하면서부터 첫째 입에서 나오는 “심심해!”라는 투정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둘인 것이 코로나시국에 가장 감사했다. 매일 같이 집에 있어야 하는 시기에 두 아이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함께 놀았다.

둘째가 태여나기 전에는 첫째 잠자리 독립이 목표였다. 그래서 따로 재우기도 해봤다. 하지만 동생이 생기니 아이가 불안해하기도 하고 새벽에 동생이 깨서 울면 혼자 자던 아이가 울음소리에 놀라 방으로 뛰여오군 했다. 첫째가 혼자 자랄 때는 없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한밤중에 집안이 발칵 뒤집혀 란리가 나군 한다. 이 교통정리를 엄마 혼자 해야 할 때 혼이 다 나가버린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따로 재우는 게 더 힘들었다. 둘이 같이 재우니 서로 의지하면서 잔다. 불을 끄고 이야기를 하면서 뒹굴뒹굴 하다가 자면 되니 엄마의 몸도 편하다. 잠자리 독립을 안하면 뭐 어떤가? 행복하면 된 거지.

2. 첫째와 단둘이 데이트를 한다

동생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첫째가 느끼는 마음의 공백은 있기마련이다. 엄마를 독차지하다가 이제는 자기가 뒤전이 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래서 첫째와 단둘이 데이트 시간을 만드는 편이다. 첫째와 데이트할 때는 1)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 2) 엄마와 대화할 시간 마련에 주안점을 둔다. 우리 첫째는 평소에 말이 없는 것 같지만, 멍석을 깔아주면 봇물 터지는 성격이다. 데이트를 하는 날, 그동안 쌓아둔 말을 마구 풀어놓는다. 그럴 때 그저 끄덕끄덕만 해준다. 말할 수 있는만큼 쏟아낼 수 있도록.

동생은 아직 할 수 없는 스포츠활동을 단둘이 하기도 한다. 이때 아이만을 주목해준다. 사진 찍을 때를 제외하고는 스마트폰도 보지 않는다.

주말에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온라인 강의 촬영이였다. 강의 촬영장에도 첫째를 데려갔다. 모두 혼자해야 하는 작업이 많았는데 첫째가 도와줘서 도움이 되기도 했다.

과학인지 그저 내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와 데이트를 하고 나면 동생에게 더 잘해주는 걸 느낀다. 말씨도 상냥하고 동생의 저지레에 너그러워진다. 가끔 나에게 눈짓을 보내기도 한다. “엄마랑 나는 아는데, 얘는 아직 모르나봐. 아이구 정말” 이런 눈빛을 보내면 나도 같이 찡긋 해준다.

3. 여차하면 안고 업는다

아기띠는 절대 버리지 말 것!

둘째를 키울 때 가장 고마웠던 은인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아기띠를 꼽을 것이다. 아기띠가 없었다면 과연 애 둘을 혼자 키울 수 있었을가?

이사를 할 때도 아기띠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고 첫째 등하원할 때, 장보러갈 때, 대중교통 리용할 때, 놀이터갈 때, 집안일 할 때, 첫째 공부봐줄 때 등등 아기띠로 해결한 것이 너무 많다. 특히 나는 업기가 정말 대박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업는다면 거의 모든 일이 해결된다.

아기띠는 36개월부로 작렬히 전사했다. 첫째 키울 때부터 썼으니 9년을 썼다. 너덜너덜해진 어깨끈을 보며 나의 육아세월을 느낀다. 나랑 함께해줘서 고맙다.

4. 부모의 마음 챙김을 하려고 노력한다

둘째를 키운지 6개월쯤이였던가? 극도의 우울감과 피로를 느낀 적이 있었다. 수면은 부족하고 내 로고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아이들은 오늘도 나에게 이것저것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심신이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첫째 때는 이런 신호를 알면서도 혼자 참고 술에 의지하거나 나쁜 생각을 많이 했다. 둘째 키우면서는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에 주변에 알렸다. 내가 요즘 우울하다, 나쁜 생각도 든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쓰러질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지인들이 우리집에 찾아왔다. 이때는 2018년이니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다.

지인 중에 그림책 테라피스트(画册疗法)가 있다. 그림책은 어른에게도 위로를 준다. 테라피스트님이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니 엉엉 울었다. 지인들 앞인데도 쪽팔리지도 않고 일단 내가 울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림책을 매개로 이야기도 나누고 펑펑 울었더니 얼마나 힐링이 되었는지 모른다. 정말 내가 암흑같이 둘째육아를 하지 않는 것은 그림책 테라피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둘째를 정말 원했기에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사하다

나는 둘째 아이를 간절히 원했다. 류산 경험도 있다. 아이 한명을 더 낳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기에 두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스럽다.

내 배로 낳은 두명의 아이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손을 잡고, 마주보는 그 자체가 나에게 감동이다. 이런 내 마음이 카메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둘이 나란히 붙어있기만 하면 저절로 셔터를 누르고 있다. 그래서 내 스마트폰에는 이런 사진이 많다.

여기서 포인트는 둘째가 정말 귀엽다는 것이다.

육아를 한번 겪어봤기 때문에 부모인 나도 당황스러움을 덜 겪게 된다. 그래서 아이의 귀여움을 만끽하는 여유가 조금은 생긴다. 이 귀여움은 이 시기만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아쉽다.

언제 크나 한 적도 있다. 그런데 벌써 래년에 유치원을 간다고 한다. 둘째는 태여나 처음으로 친구들을 만날 것 같다. 첫째가 다녔던 유치원에서 우선접수가 된다기에 접수를 해뒀다.

많이 내려놓고 귀여워해주는 것에 주안점만 두면 둘째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 때 힘들고 상처받았던 기억을 둘째를 키우며 치유받았다. 안달복달하고 긴장하는 나의 근성이 많이 달라졌다. “뭐 어때” 이 소리를 자주 한다. 진짜 뭐 어떤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 반드시 이런 부모가 되여야 하고, 반드시 이런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법칙이 어디 있는가?

/육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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