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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신문 > 교육

제3회 설봉교사상 우수교사상 수상자

사랑과 정성, 지혜로 가꾸는 터전

통하현조선족학교 윤성애교원

2022-02-07 16:28:31

흑룡강성 통하현조선족학교에서 졸업반 한어과 교수에 학교의 업무교장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윤성애교원은 훌륭한 업무능력을 소유하고 사업을 빈틈없이 까끈히 잘 해나가는 동시에 다재다능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 학교의 보배둥이 교원으로 떠받들리고 있다.

1998년에 사업에 참가하여 장장 22년을 하루와 같이 교육일선에서 열심히 사업해온 윤성애교원은 반주임사업방법과 학생을 교육하는 방면에서 사랑이 넘치고 정성이 지극하며 지혜가 있는 교원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교원사업에 참가해서 첫시작부터 학급담임에 한어과 교수를 담당하다 보니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아홉시까지 학교를 떠날사이 없었고 기숙제 학교라 보니 공휴일이 따로 없이 학교에 나와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학생들에게 있어서 그는 엄마같고 친구같은 존재였으며 학교는 그의 집이나 다름없었다.

불우한 학생들에 대한 사랑의 손길

그는 생활이 어렵거나 기가 한껏 꺽이여 있는 학생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주군 하였다.

그가 맡은 학급에 김영순학생이 있었는데 당시 어머니가 탈북녀 신분이 들통나면서 강제송환을 당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그 타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면서 타락한 상태이다보니 당시 의란현 본지에 있는 조선족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김영순학생은 2년째 린근의 한족학교마저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산속에 거주하면서 하루하루를 허송하고 있는 불쌍한 처지의 학생이였다. 정황을 알고 통하현조선족학교에서는 그를 학교에 데리고 온 후 책임성이 강한 윤성애 교원의 반급에 편입시켰다. 김영순 학생의 생활 형편을 안 학교에서는 그날 부터 식비마저 면제해 주었고 윤성애교원은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영순학생에게 학용품을 사주고 옷가지도 사서 입혔으며 휴일이면 간식도 챙겨주고 색다른 반찬도 해 먹이며 부모와 같은 사랑을 주면서 안심하고 학업을 완성할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한편 랑독, 랑송에 특기가 있고 암송능력이 뛰여난 그의 특장을 발휘시켜 강연지도를 알심들여 하여 성급, 시급경색에 참가시켜 성공의 희열을 맛보도록 이끌어 주었으며 초중2학년 하학기의 10월중순에 급성맹장염에 걸린 그를 병원에 가서 수술울 받게 한 후 돌볼 사람이 없는 형편에서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숙소로 돌려 보내주었다. 당시 선생님의 관심에 감동을 받은 영순학생은 눈물을 머금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윤선생은 오직 열심히 공부하여 중점고중에 입학하여 밝게 인생길을 걷는 것이 제일 좋은 보답이라고 하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공든 탑이 무녀지랴만 김영순학생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수한 성적으로 중점고중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교육사업에서 사랑만큼 영향력이 큰 교육방법은 없다며 반급학생을 자기 친자식처럼 사랑해주고 보살펴 주며 따뜻함을 알게 하였다. 그는 어머니가 페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치료때문에 엄청난 빚을 짊어지게 되자 타락한 나머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간암말기에 이르러 돌볼 사람이 없게 된 김현룡이라는 학생이 엄마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흘날사흘밤을 울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의 아픈 마음을 다독여 주며 하루빨리 슬픔속에서 헤여나와 보다 견강한 자세로 학업을 이어 나갈수 있도록 그의 곁을 지켜 주었다. 그의 사랑과 관심끝에 현룡학생은 마침내 다시 평온한 심정을 되찾고 슬픔을 동력으로 삼고 더욱 학습에 매진할 수 있었으며 원만히 초중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는 매번 현룡이의 우렁찬 문안전화를 받을 때마다 저도모르게 더욱 많은 사랑과 관심을 학생들에게 주리라는 다짐을 더해 보게 된다고 한다.

윤성애 교원은 학생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면서도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학생들의 자존심을 고려하고 사랑과 관심에 보답하고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도록 하는 책략있고 효과적인 관심을 주군 하였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학급에 리홍해란 학생이 있었는데 그가 세살나던 해에 그의 어머니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생계때문에 남방에 나가 일을 하다보니 그는 이모집에 맡겨져 자라게 되였다. 하지만 이모집의 생활형편 또한 넉넉치 못하다보니 간식도 한번 사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이를 안스럽게 생각한 윤성애 교원은 리홍해 학생의 자존심이 상할가봐 홍해학생은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도 잘하고 선생님을 도와 반급의 무거운일, 어지러운 일을 척척 잘해 나서기에 반급의 모범이라고 칭찬해 주면서 매주마다 간식을 사먹을 용돈을 챙겨주고 명절때면 새 옷을 한벌씩 사주군 한다. 매번 관심을 줄때마다 학생에게 도리를 설명해 주고 사랑에 보답하는 감사의 마음을 지니도록 이끌어 주었다.

윤성애 교원은 반급의 여러 특수생들에게 사랑과 정성을 몰부은 한편 우수생들의 특장도 아낌없이 발굴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이끌어 주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더욱 학습에 전력할 수 있도록 부단히 고무격려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남다른 책략으로 우수 모범 반급으로 견인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한어과를 배우도록 교수를 참답게 진행한 한편 과외시간을 리용하여 랑독, 랑송지도에 글짓기 지도를 착실히 하여 이 방면에 특장이 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성급, 시급에서 진행되는 각종 경색에 참가하도록 하여 수차례 수상하도록 이끌어 주었으며 그는 우수지도교원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그는 임신 6개월에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 두시간씩 전교 단체부 훈련지도에 나서 뛰여 다녔으며 매년 학교예술절때면 절목훈련때부터 어려서부터 익혀온 전자풍금 반주를 해주기에 바삐 돌아쳐야 했으며 반급의 절목이 다른 학급에 뒤질새라 반급학생들의 절목훈련에 눈코뜰새 없이 바삐 돌아쳤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기숙사를 돌아보는 일이 첫째 일과로 되였고 저녁 자습시간마다 학생들을 지켜 주고 취침시간이 되여서야 귀가하군 하는 때가 많다보니 가정에 미안할 적이 많았다고 한다.

애써 사업해온 보람으로 2010년에는 그가 맡은 반급은 학교의 우수반급으로 선발되였고 2011년과 2012년 련속 2년간이나 현급우수반급으로 선발되였다. 2012년 8월에 길림조선신문에 그의 우수 반주임 사적이 실리는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으며 그가 맡은 학급이 2013년과 2014년 련속 2년간 현급 우수학급으로 선발되는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모든 학부모와 학교 학생들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2013년과 2014년에는 시급우수교원의 영예를 받아안게 되였다.

교수사업과 업무교장사업에서도 뚜렷한 성과 이룩

그는 교단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훌륭한 교원이라면 우선 맡은바 교수사업을 책임성있게 훌륭히 잘 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교수방면의 업무실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는 교수리론을 참답게 학습하고 교수리론수준을 제고시키는 한편 교수실천가운데서 시간을 짜내여 우수교원들의 교수를 들으면서 우수한 경험과 방법들을 참답게 학습하고는 자신의 교수실천에 도입하기에 노력해 왔고 반복적으로 자신이 알심들여 준비한 교수를 여러 지도선생님들께 선보이고 따뜻한 지도를 받으면서 부단히 창신적인 교수를 위해 고심해 왔다.

하여 보다 빠른 시일내에 학교의 교수환경에 적응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교수풍격을 갖출 수 있게 되였다. 그는 한어과 교수를 하는 가운데서 항상 한시간 수업을 한 후 수업의 연장으로 알심들여 여러 학생들에게 알맞는 숙제를 내주고는 숙제검열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지식장악정도를 료해하였다.

아침시간과 자습시간을 리용하여 개별지도를 차근차근 해 나가며 학습부진생들을 이끌어 주고 우수생들의 더욱 훌륭한 발전을 위해 기초를 닦아주었다.

한편 교수대상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인 만큼 학생들의 정감세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료해하고 학생들의 정감세계의 변화를 즉시적으로 파악하고 소통을 거쳐 학생들로 하여금 심리 장애를 제거하고 학습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초중2학년 학급에는 탕원중학교에서 전학해온 김성이라는 남학생은 부모들의 리혼으로 인해 정서가 많이 저락된 원인으로 저녁마다 개별지도도 해주었지만 별로 진보가 보이지 않았고 학생은 항상 소침해 있었다. 하루빨리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열심히 해나갈 수 있도록 신심과 용기를 주기 위해 가장과 련계하여 정황을 료해한 후 곧 어머니와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하고 계절따라 신이랑 옷가지들도 사서 입히고 공휴일이 되여 학교에 혼자 남아 있는 김성에게 소고기 장졸임도 해다주고 물만두도 빚어 먹이며 정성껏 돌봐 주는 한편 시간을 내여 자주 마음속 말을 할 수 있는 대화상대가 되여주고 김성학생으로 하여금 그를 믿고 따르게 하였다. 

그러자 마음의 문을 연 김성은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고 꼭 선생님의 관심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잘 하겠다고 맹세를 다지고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결과 김성은 몰라보게 진보하게 되였으며 끝내는 우수한 성적으로 고중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신작칙, 소반화수업모식 실천으로

그는 학기마다 성, 시, 현에서 조직하는 각종 교원자질제고를 위한 학습반에 참가하여 자신의 업무수준을 제고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는바 국가교육양성반에 참가하여서는 우수학원으로 선발되는 영예도 지닐 만큼 매번 학습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배웠으며 학교에 돌아와서는 여러선생님들게 학습한 내용을 공유하고 교수실천과 결부시켜 새로운 발전을 위해 탐구를 진행하군 하였다.

그는 적극적으로 성, 시, 현급의 각종형식의 교수경연에 참가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자신의 독특한 교수풍격에 따른 우수한 경험과 리론을 총화한 연구성과와 십여편의 론문은 국가급, 성급, 시급의 우수론문으로 평선되였다.

그의 교수실천과 교수리론면에서 비교적 성숙된 되고 뚜렷한 성과가 보여지자 학교령도에서는 그를 신임하고 그에게 “소반화배경하에서의 층차별교수” 란 “12.5” 연구과제를 그에게 맡겼다.

그는 학교에서 리천민전문가와 연길시의 박송원 전문가를 모셔온 기회를 빌어 지도를 받으면서 새 과정개혁의 선두에 나서서 끊임없는 탐구하고 실천하며 리론을 총화해내여 소반화수업모식을 통하현조선족학교의 교수모식에 도입하도록 하여 통하현조선족학교의 교수로 하여금 새로운 돌파를 가져올수 있었으며 2년간의 실천과 탐구를 거쳐 훌륭히 연구과제를 완수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진일보로 교수리론방면의 창신을 알게 되였으며 그가 쓴 십여편의 경험재료는 학교령도와 교원들의 인정을 받게 되였으며 2011년5월 흑룡강조선신문 교육란에 “교단의 능수 선진사적”이 기재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고 2012년에는 한어과 시급골간교원으로 평선되였다.

2013년에 이르러서는 업무수준이 높고 책임성이 강한 그에게 학교지도부에서는 한어과수업을 하는 동시에 학교의 업무교장사업을 맡아 하도록 하였다. 업무교장사업을 하게 되면서 학교에서 안배된 사업분량, 각종 학습, 거기에 무수한 자료들을 무더기로 정리해야 하는 등 원인으로 공휴일은 물론 방학마저도 휴식할새 없이 바삐 돌아쳐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 원망도 없이 초중조 한어과수업을 담당하면서 학교의 전반적인 교수질을 제고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교수경험과 사업경험에 비추어 업무학습시간을 리용하여 젊은 교원들에게 업무강좌를 진행하며 자신의 제고만이 아닌 한층 높은 차원에서 학교의 교수사업의 발전을 념려하고 자신의 한어과 교수실천에서 존재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과 좋은 방법들을 허심하게 교류하면서 학교의 교수사업을 활성화 시켰으며 젊은 교원들에게 많은 학습기회와 발전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한편 현, 시급 경색에 진출하는 그들을 열성껏 지도해 주었다. 

교내에서는 학기마다 “요청교수”활동을 조직학고 교수 경험을 교류하는 가운데서 교수수준을 제고 하도록 이끌어 주었으며 학기마다 학과 특색을 살려 학생들의 특장배양과 학습적극성을 배양하기 위하여 한자경색, 랑독경색, 소품경색, 이야기랑송대회 등 각종 학과 과외활동을 조직하였다. 활동을 조직한 그는 자신이 맡은 학급의 학생들을 알심들여 지도하는 한편 각 반급들의 훈현진행상황도 일일이 체크 하면서 활동이 실속있고 효과적으로 진행하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리하여 학교의 교수질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되였으며 학교의 교수는 과당수업에 이어 다양한 과외활동을 전개하다 보니 보다 활성화 되였으며 보다 효과적으로 학생들의 소질을 제고 시킬수 있게 되였다.

학생래원 보장에 커다란 공헌

현재 통하현조선족학교는 학생래원의 결핍으로 학생수가 급감하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학교령도에서는 초생사업을 학교의 중점사업으로 틀어쥐고 대대적으로 갖은 방법을 다하여 적극적으로 초생사업을 진행하였다.

윤성애교원은 학교의 초생사업의 선두에 나서서 5.1절이나 10.1국경절휴가, 여름방학, 겨울방학까지 어디에 학생이 있다는 정보만 있으면 곧장 교장을 배동해서 초생사업에 떨쳐 나서군 한다. 

수년간 일관하게 멈추지 않는 초생사업을 이어오면서 바언현의 김준걸, 김홍연. 이란현의 김영순 등 십여명 학생을 모집해 왔으며 현성내의 친구와 지인들의 연락을 받고 린근 마을의 부모일방이 조선족인 십여명 학생들을 통하현조선족학교로 오도록 하여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었고 학교의 학생래원 보장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여왔다. 

그는 또 그가 모집해온 학생들이 대부분이 가난한 학생들이라는 정황을 알고 학생들에게 말없이 학용품을 사주고 간식도 챙겨주며 여러 교원들의 선두에 서서 보다 많은 헌신을 하고 있으면서 이를 자신이 응당 해야할 일로 간주하고 일관하게 실천해 오고 있다. 그리하여 학부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를 따뜻한 마음을 지닌 훌륭한 교원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평범한 교육사업터에서 청춘을 빛내고 인생의 가치를 찾는 것은 윤성애교원의 영원한 추구이다. 그는 열심히 사업한 보람으로 36세에 중학교고급직함을 소유하게 되였으며 수많은 영예를 받아안고 많은 성적들을 거두었지만 조금도 교만하지 않고 나날이 향상하기에 노력에 노력을 다 하고 있다.  

그는 항상 민족교육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고심하고 있는바 현재에 이르러 서는 학교실정에 비추어 이중언교육의 특색을 살리며 다민족문화 환경에서 조선족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오늘도 더욱 분발하며 열심히 사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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