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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떡볶이만 먹어도 행복했었는데…

2021-11-20 10: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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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후반 련애할 때와 신혼 초기에 늘 주머니가 썰렁했다. 갓 취직해 두사람 합쳐서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었지만 목돈이 없었다. 종자돈을 모아 제대로 투자를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그때는 적금으로 종자돈을 만들라고 조언을 하던 때였다.

내 기억에 남편은 3년만기 4% 복리 적금 통장이 있었다. 요즘엔 정말 이런 통장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적금, 적립식 편드 통장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월급날이 되면 자동으로 이 통장들엔 맞벌이 부부의 월급이 수혈됐다. 몇달 뒤 꽤 목돈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성취감이 컸다. 조금씩 불어나는 계좌를 보며 늘 가진 것은 없어도 배가 부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끔은 남편이 수건을 많이 가져오기도 했다.“이거 뭐예요?”라고 물으면 회사에서 기념품으로 나온 건데 선배들이 귀찮다고 버려서 자기가 다 가져왔다고, 수건을 당분간 안 사도 되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부가 종종 통 크게 지갑을 여는 것 있었으니 그것은‘먹는 것’이였다. 사귄지 백일째 되던 날, 남편이 취업합격 통보를 받은 날, 결혼기념일 등등엔 분위기를 내러 다녔다. 그런데 그때 갔던 레스토랑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 소박했다. 중저가 뷔페같은 곳들이였다. 그래도 먹고 나면“오래간만에 돈을 많이 썼으니까 한동안은 아껴 쓰자”라고 서로 다짐할만큼 큰마음을 먹고 가야 하는 좋은 곳들이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당시 그렇게 허리띠를 조여매고 살 수 있었던 건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였다. 돈을 모으는데서 오는 즐거움이 돈을 쓰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넘어섰다. 남편과 금요일 밤마다 1인분 8000원짜리 순대볶음 2인분을 즐기며 최상의 행복을 느꼈다. 순대볶음 이외에도 20대 신혼부부였던 그 시절 우리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포장해온 떡볶이, 닭강정 등을 사랑했다. 사실 주말이 시작되는 저녁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같이 보면서 500ml짜리 맥주 한캔(이 두캔이 되고 세캔이 되고)에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매콤짭짤한 안주거리라면 무엇이든 맛있었다. 한껏 멋을 낸다고 애썼던 신혼집도 지금 보면 소박했다. 우리가 정말 돈을 많이 쓴 가구는 침대 하나였다.“집에 와서 가장 오래 쓰는 가구는 침대니까, 다른 가전제품이나 가구는 저렴한 걸로 사자”우리 부부는 이런 같은 생각을 가졌다.

그런데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나나 남편이나 옛날과 비슷한 수준의 소비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포장마차에서 순대볶음이나 떡볶이를 사다 먹어도 옛날의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맛도 그저 그렇고 뭔가 저렴하게 한끼 때웠다는 느낌이 들군 한다. 기념일마다 갔던 뷔페는 2~3년전에 마지막으로 간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왜 옛날 그 맛이 안 날가?”라며 중얼거리는 나에게 남편은“솔직히 이제는 고급 호텔 뷔페나 비싼 맛집에 가도 그때만큼 맛있다는 생각이 안 든다”라고 말했다.

20대 때 우리 부부는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차와 집, 고급 서비스 등을 누리면 끝없는 행복이 펼쳐져 있을 줄 알았다. 결코 재력이 있다할 정도는 아니지만 20대 시절보다는 조금 더 여유가 있어진 지금, 소비에서 얻는 충만감을 반추해 보면 딱히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물론 돈을 쓰면서 얻는 만족감이야 있지만 소비규모 대비 얻는 만족감의 크기가 너무 작고 그 만족감이 오래가지도 않는다. 왜 더 고급스럽고 흔치 않은 음식을 먹는데도 옛날처럼 설레지 않을가? 그 시절 우리 부부는 음식의 맛이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물론 맛은 있었다) 학생 때는 자주 가지 못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그 시간, 서로에게 밥을 사주면서 느꼈던 뿌듯함에서 환희를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점점 식도락을 찾는 일이 고난도가 되여갈 때쯤 아이가 태여났다. 아이에게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사주는 게 또 다른 삶의 락이 되였다. 물론 우리 부부는 워낙 식도락을 중시하는 부부라“나는 안 먹어도 아이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는 분들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나한테 크게 맛있지 않은 음식이라도 아이가 잘 먹으면 어떤 진귀한 음식보다도 그 음식이 최고가 된다. 딸이 잔치국수를 너무 좋아해서 나도 생전 안 먹던 잔치국수를 열심히 먹고 산다. 어떤 음식이나 소비 모두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있지만 그것을 함께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더 큰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좀 덜해지면 가족과 함께 외국 려행을 가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딸이 중학교 2학년쯤 되여있을 10년쯤 후에는 그 음식을 추억하면서 딸의 다섯 살 시절을 떠올리게 되겠지.

/김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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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물 여덟잔. 더 정확히는 녀성 2.2ℓ, 남성 3ℓ(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연구). 여간 신경 쓰지 않고는 챙겨 마시기 어려운 량이다. 맹물 대신 차로 수분을 보충하면 어떨가. 차는 비타민과 항산화물질이 풍부하지만 칼로리는 0에 가깝다. 장기간 마시면 심장 질환, 암, 당뇨병 등에 걸릴 위험도 낮아진다. 여기서 차에 든 카페인이 걱정이다. 섭취한 수분을 오줌으로 배출하는 리뇨 작용 때문이다. 많이 마셔도 많이 배출하면 수분 보충이란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그러나 큰 걱정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연구에 따르면 카페인을 하루 500㎎ 미만 섭취한다면 괜찮다. 차를 11~18잔 정도 마셔야 도달하는 량이다. 그 이하라면 소변 배출이 다소 늘더라도 본격적인 리뇨제로 작용하진 않는다.
  • 나 역시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잔소리를 듣고 자랐다. 내 경우는 엄마보다 아빠에게 잔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아마도 직장에 다닌 아빠가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같이 있는 시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교육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동생한테 잘해라”,“공부 열심히 해라”부터“일찍 다녀라”,“방 정리 좀 잘해라”까지 수많은 잔소리의 중심에는 아빠가 있었다. 솔직히 아빠의 잔소리는 내 삶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삶은 내가 사랑하는 이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혹은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의 모습을 본받아 바뀌거나 아니면 직접 경험을 통해 깨우치면서 변화했던 것 같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잔소리보다는 오히려 좋은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필요성에 의해 변화한 경우가 많았다.
  • 20대 후반 련애할 때와 신혼 초기에 늘 주머니가 썰렁했다. 갓 취직해 두사람 합쳐서 적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었지만 목돈이 없었다. 종자돈을 모아 제대로 투자를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그때는 적금으로 종자돈을 만들라고 조언을 하던 때였다. 내 기억에 남편은 3년만기 4% 복리 적금 통장이 있었다. 요즘엔 정말 이런 통장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적금, 적립식 편드 통장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월급날이 되면 자동으로 이 통장들엔 맞벌이 부부의 월급이 수혈됐다. 몇달 뒤 꽤 목돈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성취감이 컸다. 조금씩 불어나는 계좌를 보며 늘 가진 것은 없어도 배가 부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끔은 남편이 수건을 많이 가져오기도 했다.“이거 뭐예요?”라고 물으면 회사에서 기념품으로 나온 건데 선배들이 귀찮다고 버려서 자기가 다 가져왔다고, 수건을 당분간 안 사도 되겠다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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