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마을에 갔다가 생기지 말었어야 할 이런 장면을 보았다. 신농촌건설계획에 따라 촌지도부에서는 낡은 초가집 두 채를 헐어버리고 시멘트길을 닦은후 길량옆에 꽃과 과일나무를 심고있는데 한 로인이 팔짱을 끼고 “저 초가집은 우리가 귀농들어올때 지은 집이라 헐면 안되는데… 텅빈 마을에 길을 닦아선 뭘해… 과일나무심어 누구 좋은일 하려구…” 이 말을 들은 촌지서가 우리가 이렇게 하는것은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고 앞으로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는것이라고 차근차근 설복해도 로인은 고집을 부려 오고 가는 말이 거칠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쌓아온 로인들의 경험과 지혜는 황금으로도 바꿀수 없는 보귀한 재산이다. 우리 조선족들의 된장, 김치, 막걸리 등 식품과 돌잔치, 결혼, 회혼, 산수연 등 전통문화는 수백년동안 로인들 통하여 대를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부모를 공대하고 로인들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사회풍기가 날이 갈수록 짙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럴수록 우리 로인들은 자기 안일만 챙기고 고집하며 경직된 사유방식으로 젊은이들의 사업을 빈정거려서는 안된다.
개혁이 심화되고 경쟁이 치렬한 시장경제 속에서 우리 로인들은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 는 도리를 명기하고 젊은이들의 사업에 눈길을 돌리고 그들의 사업을 적극 받들어 주어야지 걱정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주인공다운 태도가 아니다. “걱정”은 구경만하는 것이고 “참여”는 자기 안일을 따지지 않고 남을 구하는 헌신 정신이다.
나는 흑룡강 동녕현에서 60여년 살면서 대대 민병련장, 중학교 교원, 진당위선전위원으로 사업하다가 2006년에 퇴직했다. 사업 제1선에서 물러선후 나는 친구들과 술놀이도 하고 외지유람도 다닐 수 있었지만 수요에 따라 각종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삼차구조선족진당위에서 일손이 모자라 진력사 편찬에 어려움을 겪고있을 때 나는 일전 보수도 없이 4명 편찬위원들과 함께 근 20만자에 달하는 “삼차구조선족진력사”를 편찬했으며 흑룡강신문사 특약기자의 신분으로 200여편의 통신기사를 신문에 발표했다. 자식따라 대련에 이사온 이후에도 나는 이미 고희문턱에 올라섰지만 흑룡강신문사와 길림신문사의 특약기자, 대련시조선족문학회 고문, 시구역 문구대장 등 여러 임무를 걸머지고 나름대로의 뜻있는 여생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기계는 기름을 쳐야 녹이 쓸지 않는다. 우리 백세시대 로인들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점없이 살아” 가려면 인민들의 생명안전과 신체건강을 위해 90세 고령에도 코로나19 방역전투에 용약 참여한 종남산원사를 따라배워 온 사회가 진통을 겪고 있는 코로나와의 박투, 사회의 부정비리, 생태환경보호, 빈곤퇴치 등 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황혼을 불태워가는 것이 옳바른 몸가짐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