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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첫 동계올림픽 참가 조선족선수들은 누구일가

2022-03-02 07:57:36

2022북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더불어 중국은 9금 4은 동2의 성적으로 금메달순위 3위를 차지하며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普莱西德湖) 제13회 세계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이래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당당히 세계빙설스포츠강국의 반렬에 올랐다. 이는 1949년 새 중국 건국이래 력대 중국빙설스포츠인들의 피타는 노력과 갈라놓을수 없다. 그리고 조선족도 중화민족대가정의 일원으로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며 중국 빙설운동의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했다. 하다면 중국의 첫 동계올림픽 대표단은 몇명이며 그가운데 조선족선수들은 몇명이나 될가?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제13회 동계올림픽에서 중국대표단이 입장하고 있다. /자료사진

1980년 2월13일부터 24일까지 미국 뉴욕주의 자그마한 도시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제13회 동계올림픽에는 37개 나라와 지역의 1072명 운동원들이 참가했다. 1979년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합법적인 지위를 회복한 중국은 이번 대회에 28명의 운동원을 파견, 스피트스케이팅(速滑), 피겨(花样滑冰), 알파인스키(高山滑雪), 노르딕스키(越野滑雪), 바이애슬론(冬季两项등 종목에 참가했다. 스피드스케이팅의 조위창(赵伟昌)선수가 개막식 기수를 맡아 새 중국 올림픽 첫 기수로 되였다. 28명 가운데 스키종목의 박동석, 림광호 등 선수와 스피드스케이팅의 공미옥, 신정숙, 박미희, 리호춘 등 조선족선수들이 출전하며 나라와 민족의 영예를 빛내였다. 북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조선족이 스피드스케이팅에 연변출신의 김경주선수와 흑룡강출신의 량림화 감독 등인 것을 감안하면 인원수나 비례수면에서 월등히 높은 수치인 것을 보아낼 수 있다. 

스키무대를 주름잡던 지난날을 회억하고 있는 박동석 선생. /자료사진

시설, 장비 등이 렬악한 환경에서 당시 중국의 알파인스키 1인자였던 박동석(75)은 길림성 통화시 출신이다. 1960년 12세의 박동석은 통화시체육학교에 선발되여 스키운동생애를 시작했다. 간고한 환경에서 스키운동에 대한 열애와 끈기로 견지해 련속 10년간 전국알파인스키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0년 34세로 중국대표단 가운데 최년장자로 레이크플래시드동계올림픽에 참가해 83명 출전선수가운데 34위를 차지, 당시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퇴역한후 스키감독을 하며 전국우승자를 많이 배출, 그중에는 아들 박설봉도 있다. 

국가대표시절의 림광호 리문옥 부부. /자료사진

림광호 역시 '중국의 스키고향'으로 불리는 길림성 통화시 출신이다. 선배인 박동석이 알파인스키 1인자였다면 림광호(63)는 노르딕스키 전국 최강을 자랑했다. 림광호는 이번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의 15킬로미터 노르딕스키에 출전해 48분38초36의 성적으로 63명의 출전선수들가운데 50위를 차지했다. 13회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4회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련속 2회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던 림광호는 퇴역한후 통화시체육운동학교에서 감독을 맡아 후학들을 양성했다. 그의 부인인 리문옥씨도 당시 국가팀에 입선될만큼 전국에서 이름난 스피드스케이팅 운동원이였으며 역시 통화시체육운동학교에서 감독을 맡아 후대양성에 주력했다. 

1963년 2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제57회 세계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의 1500미터경기에서 중국의 동계종목 첫 우승을 따낸 라치환의 계보를 이어 스피드스케이팅종목은 조선족선수들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이였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13회 동계올림픽에도 공미옥, 리호춘, 신정숙, 박미희 등 조선족선수들이 참가했다. 

새 중국 운동사에서 첫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로 기록된 공미옥(62)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출신으로 당시 중국의 녀자 스피드스케이팅대표팀의 주력선수였다. 1980년 2월 14일에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1500미터경기에서 20세의 공미옥선수는 2분 22초 48의 성적으로 완주했으며 27위를 차지했다. 경기후 공미옥은 중국을 대표해 올림픽에 참가한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비록 긴장하고 경기장에 대한 적응도 부족해 훌륭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감동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도 퇴역한후 감독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후에 상업에 종사했으며 현재는 한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대표단 리몽화단장 및 동료들과 함께 사진을 남긴 리호춘선수.(우1) /본인제공 

한국에서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는 리호춘선생. /본인제공

흑룡강성 녕안시 출신의 스피드스케이팅 명장인 리호춘(66)선수도 중국의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주력선수의 한사람이였다. 1956년생인 리호춘은 녕안시조선족중학교의 스케이트 선수였다.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녕안시업여체육학교스케이트반 의 운동원이였다. 1973년 추천을 받아 목단강시체육공작대 스피드스케이팅 운동원으로 있을 때 전국 종합우승을 따내여 체육건장 칭호를 수여 받았다. 레이크플래시드 13회 동계올림픽의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미터 경기에 출전하여 1분 22초 10의 성적으로 32위를 차지했다. 퇴역후 목단강시 체육국 산하기관에서 사업하였고 1997 년부터 상업에 종사, 현재는 상해에서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  리호춘선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라치환 같은 거목이 있었기에 그를 본보기로 스케이트에 매진하게 되였다며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참가 당시 외국선수와의 장비 및 기량차이를 확실하게 느꼈다고 말하고 나서 참가선수가운데 일부는 청소년 운동원 육성 프로젝트에 따른 견학에 중점을 두어 실제 경기에 참가한 선수는 적었다고 밝혔다. 

신정숙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녀자 1000미터 경기에 출전하여 32위를 차지했으며 박미희의 구체적인 성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전국적인 스피드스케이팅 명장이였다는 것은 의심할바 없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새 중국의 첫 동계올림픽 대표단은 1984년 로스엔젤레스 새 중국의 첫 하계올림픽 대표단에 비해 성적으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모두 미미했지만 주은래총리의 부인이며 당과 국가의 지도자인 등영초동지가 당시 중국대표단을 회견하면서 "우린 대부분 종목에서 수준이 높지 못하기 때문에 갑자기 세인을 놀래울만한 성적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새 중국 운동원들이 곤난을 두려워 하지 않고 간고하게 분투하며 친선제1을 중시하는 정신면모를 보여줘야 한다."는 당부는 충분하게 완수했다. 

1980년 2월 15일, 중국의 전통명절인 음력설전야-그믐날에 펼쳐진 중외운동원들의 친목모임에서도 중국대표팀의 조선족선수들인 공미옥, 박미희 등 선수들이 우리 민족의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중국운동원들의 다재다능한 장끼와 정신면모를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진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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