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国内统一刊号: CN23-0019  邮发代号: 13-26
흑룡강신문 > 문학

【수필】 유한마담 엄마- 소초

2022-01-29 15:53:52

마냥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하소연하는 엄마를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내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다른 엄마들과는 아주 다르다.

특히 엄마는 젊어서부터 복장 류행에 매우 민감했다, 색채감이 뛰여나고 현대적인 감각이 뒤지지 않았으며 패션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할 뿐더러 사고방식과 디자인이 모던하였다. 게다가 무슨 일에서나 뒤질세라 자기를 내세우기를 잘하고 칭찬해주는 소리와 박수갈채를 받는걸 무척이나 기뻐한다. 자기련민에 빠져있는 엄마는 이렇게 마음이 락오할세라 사회와 시대의 진보에 뒤떨어지지 않고 여의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초심을 지켜 언제나 자기의 마음과 감각을 줄곧 따라 온 사람이다.

세월이 주마같고 나이가 원쑤라고 아마 삼사십대쯤이라도 엄마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서슴없이 산업화의 바람이 한창인 연해로 들어가 맘이 맞는 사람들과 더불어 뜻을 이루는 길을 열었을 거다. 그리고는 두말할나위도 없이 정성을 쏟아 친히 디자인한 멋지고도 색갈이 잘 조화되고 색채 감각의 뛰여난 최신 류행의상을 모델에게 입히고 자기의 가치를 증명케하는 패션쇼 무대에서 미명을 떨쳐 세인의 눈길을 끌었을 테고... 이런 눈부시고 화려한 인생이 엄마가 열망하는 생활인데, 무정하게도 늙지 아니하는 하늘은 왜서 엄마를 요 지경에 빠뜨려놓고는 불우한 명운을 한탄하게 하는지. 엄마의 장미빛 꿈과 현실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까마득히 먼가? 

생각컨대 아버지는 엄마의 그런 소회와 심경을 바이 모르고 있지는 않으셨을 거다. 허나 애당초 엄마의 애호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고 감성이 무딘 고지식한 인텔리셨던 아버지는 끝까지 심중을 열지 않으신채 이 티끌세상을 떠나 저 망망한 태허를 자유자재로 떠다니는 하나의 별이 되셨다. 아버지가 떠나신지도 칠년째, 그러나 과거의 생경지폐는 머리속에 아직껏 남아 있어 엄마는 지금도 가끔씩 아버지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는다. 언제 한번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적이 없었다고. 아버지에 대한 야속함이 여간했으면 저러랴하고 리해도 되지마는 때론 듣기 거북할 때에는 적구지병만을 바라는 엄마가 도리어 미워진다. 왜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을 용서해주지 못하는가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엄마와 아버지의 불행한 혼인으로 자식들도 괴로움을 많이 당하군 했다. 그렇다고 왈가왈부 잘잘못을 가리고 밝힐 일은 아니지만 만나지 못하는 두갈래의 레루를 걸어가듯이 엄마와 아버지는 결국 서로간에 사랑하는 마음의 만남을 바이 이루지 못했다. 마치 남북을 가리키는 라침판의 S와 N처럼 엄마와 아버지가 원하는 서로의 뜻이 향한 인생 길에서의 방향부는 그렇게도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또한 가장 멀게 서로가 느껴진 엄마와 아버지, 잘 생긴 인물 하나만 빼놓고는 어디 비슷한 점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엄마와 아버지는 가정은 도리를 따져 묻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주고 받는 포근한 심령의 안식처라는 점을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서로간 격을 두고 따분하게 삶을 영위해온게 아날까? 엄마와 아버지의 일생을 가장 알맞게 해독한 사람은 아마도 러시아작가인 레우노브인 것 같다. "선량한 사람들은 삶이 뜻대로 되지 않기가 일쑤다. 설혹 행복이 있다더라도 그것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고맙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한 것은 비록 생활이 그토록 여의치 않아도 엄마는 언제나 개맹이가 풀어질세라 내심을 망치하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고스란히 지키고 따랐다는것이다.

이제 금방 모기(耄期)의 대렬에 들어선 엄마는 마냥 그랬듯이 오늘도 게으름없이 얼굴을 치장하고는 새로운 모드의 옷차림으로 거울 앞에 선다. 어디 맨드리가 미흡한데 없는지 앞뒤를 요모조모 살펴본 후 그제야 하무뭇한 표정으로 문을 나선다. 그런데 그렇게 집문을 나서서 가던 엄마는 이윽고 다시 돌아온다. 오! 아버지,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제발 머리를 흔드지 마시고... 의상에 대한 엄마의 집착에 아연하여 어안이 벙벙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곁에서 보는 내 신기가 약해져 되레 황홀지경에 이르는 것 같은 느낌이였으니까. 다름이 아니라 엄마는 길을 가다가도 간혹 차림새가 마음에 차지 아니하면 일쩝다 생각지 않고는 바로 다시 들어와 거울 앞에서의 '연기'를 거듭한다는 거다. 각양각색의 의상에 찰찰한 엄마는 한점 틀릴세라 늘 만족이 없다. 와, 저 멋진 모자를 쓰고 옷을 맵자하게 빼입은 분이 누구네 할머니야? 진짜 나보다 더 잘 입으셨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나오게 하고 두 눈을 빛나게 하는 마력의 소유자이기도 한 엄마, 그렇다고 호사바치인 유한(有限)마담처럼 의상에 하리는 수치레를 바라는것도 아니다. 단지 색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엄마로서는 색채의 하모니를 이루지 못한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걸 정녕 용납할수 없는 망신으로 여긴데 지나지 않을뿐이다. 옷을 아무렇게나 입으면 남들이 웃어. 늙을수록 몸치장을 더 잘해야 돼. 이처럼 엄마는 살림을 잘 두량하는것이나 몸건강에 대한 섭생보다는 되레 옷디자인이나 패션에 더욱 열정을 기울인다.

카텐을 반쯤 거두고 창가에 저립하여 밖에 눈길을 준다. 태깔있게 옷을 차려 입은 엄마에게 끌려서 아름다운 석양이 엄마의 뒤모습을 벽담에 투영한다. 유한마담의 인생과는 동떨어진 유한마담의 삶은 엄마의 핑크빛 꿈을 아쉽게도 바람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상공의 부운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엄마가 그토록 의상에 신경을 썼던 것도 여의치 않은 생활에서 오는 불쾌감에 대하여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대상행동(代偿行动)에서 가지는 심리가 아니였을까? 그렇다면 엄마는 줄곧 '화려한 보복'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온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앙갚음을 할줄 모르는 엄마는 내심의 한 구석에 살며시 숨은 이 아름다운 '작간'은 추호도 감지하지 못한 채 혼자만의 인생을 연출해왔다. 오로지 스스로의 자아감각에 따라서 어려움을 감내하고 마음을 위로하면서 근심을 잊은채 생텍쥐베리가 말한 인생에 있는 진행중의 그 힘을 조금이나마 만들어낸 것이다. 이 뒤늦은 깨달음에 적이 놀라는 나. 엄마의 유한마담 인생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꽃다발을 선물해야할지? 이 변화무상한 희노애락의 인생의 기상을 그 누가 또한 예측하랴... 아, 그런데 홀연 마음은 왜 이다지도 슬퍼질까?

관련 기사
版权所有黑龙江日报报业集团 黑ICP备11001326-2号,未经允许不得镜像、复制、下载
黑龙江日报报业集团地址:黑龙江省哈尔滨市道里区地段街1号
许可证编号:23120170002   黑网公安备 23010202010023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