黑龙江日报朝文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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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2023년 -박일

2021-12-12 15:08:05

간이 살살 녹는 술냄새가 아니라 역겨운 소독수 냄새가 코구멍을 찌르는 시립병원 병실이다.

"어머!- 밤새 입이 더 비뚤어졌네." 침대에 누워있는 주령감을 들여다 보던 마누라가 새된 소리를 지른다.

마누라는 손바닥만한 손거울을 들고왔다. 그런데 왼손잡이인 주령감은 왼손이 감각을 잃어 거울을 받아쥘 수가 없다.

"이그, 이그..." 마누라는 누워있는 령감의 얼굴에다 손거울을 바투 들이댄다.

아니나 다를가 입이 돌아갔어도 어제 저녁엔 틀이를 박아넣은 어금이까지 보인다 했는데 지금은 그 입이 완전히 왼쪽 귀밑으로 옮겨져 코밑에는 구멍난 입이 아니라 굵은 털이 듬성듬성 난 오른쪽 볼이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령감은 거울을 보다말고 눈을 감았다. 돼지가 설익은 떡호박을 먹다가 주둥이로 핥아놓은 것처럼 이그러지고 망가진 자기의 얼굴이 징그럽다 못해 흉측해서 더는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4년 전, 그러니까 주령감이70살 나던 해에 중풍이 와서 눈깜빡할 사이에 왼쪽 반신이 마비된적 있었다. 그래서 침도 맞고 약도 썼더니 감각을 잃었던 왼다리도 다시 움직일 수 있었고 왼손으로도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되였다."그러면 그렇지!..." 주령감의 목소리는 다시 굵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놈의 마귀가 재차 덮쳐들다니!...

주령감은 도깨비 오줌물같은 술을 당장 끊어라던 담당의사의 말을 듣지 않은게 백번천번 후회됐다. 그런데 리허설이 없은게 인생이라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있으랴!... 주령감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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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마누라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예! 시립병원에 입원하거 맞아요."

"누구여?..." 주령감은 비뚠 입을 실룩거렸다.

"누구긴 누구겠어요. 당신같이 맨날 술만 처먹는 술귀신들이지."

"그럼... 석수하구 재섭이?!... 안돼!... 여기로 오지 못하게 해!" 누워있던 주령감은 왼손이 말을 듣지 않자 오른팔을 휘저으며 마누라가 쥐고있는 스마트폰을 나꿔챘다. 입빠른 마누라가 병실번호까지 알려줄가봐서였다.

주령감은 방금 전화 온 두 령감하고는 옛날부터 그림자처럼 붙어다닌 술 친구들이였다. 하긴 그들 세사람밖에 명칠이하고 중득이도 있었는데 명칠이는 환갑도 되기전에 뇌출혈로 명을 달리했고 중득이는3년전에 간암에 걸려 술상엔 얼굴도 못내밀더니 결국 지난해 가을에 먼저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런 친구들에게 주령감은 갑자기 오관이 뒤죽박죽이 된 못난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다. 늘 부친은92세까지 살았고, 세상뜨기 전날까지도 술을 반근씩 마셨고, 그래서 술체질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노라고 흰소리 밥먹 듯 하던 자신이 아니던가, 그랬으니 망신스러운건 제쳐놓고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그녀석들을 피하고 싶었다.

"쯧쯧 그런 얼굴에도 부끄러움이란게 붙어있는 모양이지?" 스마트폰을 빼앗긴 마누라가 혀를 찬다.

주령감은 할말이 없다. 생각해보니 열네살 중학시절, 아버지의 반지술을 훔쳐먹으면서부터 술을 배웠으니 이젠 술 경력만도60년이 된다. 그 기나긴 세월, 줄곧 술판의 개근생이 되여 소주는 하루에 한병, 맥주는 입에 댄다하면 적어서7~8병은 까부셨으니 한해에 적게 쳐도 술을 만근씩은 마신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까지60만근 술을 이 목구멍으로 넘겼다는 소리가 아닌가? 술이60만근이면 얼마나 될가? 웬간한 양어장 하나는 술로 채울수 있지 않을가?... 또 그 술을 마시고 던져버린60만개의 술병을 한줄로 쭉 세워놓는다면?!... 비뚤어진 입으로도 웃음이 실실 새나왔다.

주령감은 중학교어문교원이였다.  그는 늘 평소 맑은 정신의 강의보다 한번씩 술을 마시고 학생들앞에 나섰을 때의 강의가 훨씬 개방적이고 격정적이였다고 말했다. 어느 한번 오후에 있은 어문시간에 그는 술을 마시고 조기천의 시'불타는 거리에서'를 읊게 되였는데 감정이 북받쳐 올라 손에 쥐였던 교과서는 물론 몸에 걸쳤던 저고리마저 활활 벗어 창문밖으로 내던졌다. 그 바람에 학생들은 좋아서 박수를 치고 북을 치듯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일로 주진호는 교장한테 불려갔다.

"당신 정신있는 사람이야? 교실이 뭐 오락판인줄 알아?"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습니까."

"허튼 소리 그만 해!"

그런데 전성 중학교어문교원들이 이 학교에 모여 주진호교원의 어문교수를 참관하던 날, 교장선생은 그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슬며시 소주 한병을 꺼내주며 남들이 안볼 때 얼른 둬냥쯤 마시라고 했다. 그래서 주진호는 교장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게 되였는데 두냥이 아니라 단모금에 꿀꺽꿀꺽 병사리 절반을 굽냈다. 과연, 그날 교수는 학생들의 정서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렸고 참관온 선생들을 한결같이 격동시켰다. 그때부터 여러 학교들에서는 중학교 조선어문교수라하면 주진호를 입에 올렸다.

주령감은 또 옛날부터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학상을 받은 소설들을 두루 살펴보면 거의 모두가 술을 마신후에 쓴 글들이였다. 그는 작품밑에 작가 간력을 붙일때면 본명도"주진호"이고 필명도"주진호"라고 했다. 다만 필명"주진호" 뒤에는 (酒真好)란 한자를 박아넣었다.

"후- 이젠 주진호란 이름도, 주진호란 필명도 별찌가 되였구나..." 주령감의 입에서는 게질게질 흐르는 침과 함께 서글픈 한숨도 묻어나왔다.

바로 이때, 병실 출입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코큰 석수령감하고 대머리 재섭령감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밉살스런 령감들은 술상에서 끈질기듯 이래저래 수소문하며 기어이  여기까지 찾아왔던것이다.

(저건 또 뭐야? 앓는 사람 축하 해?...) 주령감은 저마끔 꽃을 한묶음씩 손에든 친구들을 보자 눈이 꼿꼿해났다.

"아하- 이거 웬일이야? 생각했던것보다도 입이 더 돌아갔네그려."

"허허... 자네 이런 꼴을 해가지도 우리 앞에서 큰 소리칠 건가? 엉?!"

남은 꼴보기도 싫다는데, 그래서 귀찮아 죽겠다는데 두 불청객은 제멋에 좋다고 지껄여댄다. 이건 병문안을 온게 아니라 완전히 작정하고 앓는 사람을 골려주러 온거다!

그보다도 괘씸한 건 그 뒤에 나오는 재섭령감의 말이다. 그는 오늘밖에는 시간이 없기에 이렇게 전 병원을 참빗질하면서 찾아왔노라고 했다. 그래서 마누라가 왜 그렇게 시간이 바쁘냐고 물으니 래일부턴 자기 마누라와 같이 캐나다인지 어딘지 유람을 떠난다는것이다.

"어머- 두분 참, 좋겠네요!" 재섭령감을 바라보는 마누라의 눈에는 부러움이 덩어리채 붙어있었다. 다음 순간, 얼핏 남편과 마주치는 마누라의 눈길에는 당장 찌를듯 바늘같은 가시들이 송송 돋쳐있었다.

주령감은 친구들이 떠드는 소릴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가 어지럽다는 핑게로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이럴때 주령감의 담당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병문안왔던 두 령감은 대수 작별인사를 하는척 하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의사선생님, 우리 령감 검사결과가 어때요?" 마누라가 의사한테 묻는다.

"생각했던것보다 몸상태가 더 나쁩니다... 왼쪽 반신은 신경이 몽땅 죽어서 이젠 고칠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다 뇌CT 사진을 보니 오른쪽 뇌가 많이 축소되여있습니다."

"예?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뇌가 축소되면 치매가 온다는 말인데 조만간에 이 로인은 기억력을 상실하게 될 겁니다."

"후- 어쩌지..." 마누라가 풀풀 한숨을 내쉰다.

"그래말입니다. 처음 신호가 왔을때 정신을 바싹 차렸더래도 이 상태까지는 오지 않았을건데... 아주머니도 기억날 겁니다. 올해가2023년이니까 그게5년전이니2018년, 그해 가을에 두분이 우리 병원으로 오셨댔지요?!"

"기억나구말구요, 령감이 머리가 어지럽다구 해서 찾아 오니 의사선생님께서는 뇌경색 초기이고 뇌에 피공급이 잘 되지 않아 그렇다고 하셨지요."

"그때 뇌혈관에 막힌 건 피를 청소하기 위해2주간 련속 링게를 맞아야 된다고 했는데 제 기억에 로인님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에이구, 딱 사흘을 맞고는 그만뒀어요. 그리구는 방금 여기에 왔던 술귀신들 같이 매일 술마시러만 다녔지요... 그 일 말구도 처음 풍을 맞아 팔다리가 거덜거덜 하는 걸 선생님께서 고쳐주었는데 그 후에라도 술을 끊었더라면 이지경에는 안 올게 아닌가요, 쯧쯧 미친 령감이 죽자고 환장한거지!... 술을 마셔도 어디 그저 조용히 마시는줄 아세요? 점심에 술상에 앉으면 저녁 어두울 때까지고... 소주, 맥주, 와인, 막걸리, 꼭 마치 옛날 생산대 탈곡기에 벼단이고 북데기고 한데 쑤셔넣듯이 입에다 주는대로 퍼붓는 량반이라 그놈의 몸이 살과 뼈가 아니라 강철로 만들었다 해도 다 망가질거래요."

주령감은 의사와 마누라가 지껄이는 소릴 더는 듣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주-진-호- 너의 인생은 여기가 끝이구나!)

주령감은 눈앞이 캄캄해났다. 갑자기 몸 전체가 높은 산꼭대기에서 깊은 벼랑밑으로 거꾸로 허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 앗!!

주령감은 번쩍 눈을 떴다.

사위가 어두웠다. 그래서 전등을 켜고보니 이곳은 시립병원의 병실이 아니라 마누라와 둘이 사는 자기집 침실이였다.

주령감은 얼른 탁상우에 놓인 전자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안에서는"2018년4월13일(금요일) 새벽2시"라는 글이 나왔다. 이게 뭐냐? 그럼 여직것 있은 일은 전부 꿈이였단 말인가? 주령감은 방금 겪은 일들이 너무 진실하고 또 너무도 가능한 일이여서 아직도 뭐가 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왼손으로 옆에서 입을 벌린채 정신없이 자고 있는 마누라를 흔들었다.

"여보! 여보!..."

"왜? 무슨 일인데?..." 마누라가 소스라쳐 놀라며 잠을 깼다.

"지금 내 나이 말이야, 이른넷이 아니고 예순아홉이 맞지?..."

"뭐라구? 이 령감이 갑자기 왜 이래? 그새 치매가 왔나?"

"아니, 그저 맞으면 맞다고 한번 머리만 끄덕여 봐!"

"맞아요! 그런데?..."

그런데고 뭐고 그다음엔 너무 기뻐서 주령감은  발버둥질치며 왕왕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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