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날 저녁밥상인데 또 혼자만의 저녁이다. 설날이라 지지고 볶고 한참을 법석여 고추볶음, 김치볶음, 닭알지짐, 명태구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았지만 막상 먹으려고보니 혼자만의 저녁이다.

랭면 반사발 말아서 고추볶음에 대충 저녁을 때우노라니 갑자기 눈물이 난다.

설날은 가족모임의 명절이라는데 나의 설날은 이게 뭐냐? 하는 설음에 절로 눈물이 난다.

아버지만 계셨어도 이 정도가 아닐텐데…

갑자기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다.

아버지만 계셨어도 설날이 설날같지 않은 일이 없을테고, 아버지만 계셔도 집안이 집안같지 않은 일이 없을테고 아버지만 계셔도 화기애애 가족분위기가 감돌았을텐데 하는 생각으로 자꾸만 눈물이 솟구쳤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머니는 머나먼 청도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만 계셨어도 고향의 옛집을 팔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만 계셨어도 나의 설날은 이렇게까지 처량하지가 않았을텐데 말이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옛날처럼 이모네 식구랑 고모네 식구랑 모여서 국수도 누르고 물만두도 빚고 술도 마셨을 것이다. 술상 끝엔 또 춤도 추고 노래도 했을 것이다. 춤이라면 고모부의 오리엉덩이춤이 제일 우습강스럽고 이모부의'김일성 장군' 노래가 제일 인기였을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교무가 고조를 이루었을것이고 우리 사촌형제들끼리 누구보다 노래 더 잘한다는것을 보여주려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을 것이다.

아버지가 계실 때 나랑 사촌언니는 서로 자기가 심부름을 더 많이 했다고 옥신각신 다투었다. 우는 나를 달래려고 고모가 내게 가만히 일원짜리 빨깍돈을 찔러주셨는데 나는 그 때가 그렇게 소중한지를 이제야 알았다.

오늘따라 그 때가 너무너무 그립고 아버지도 너무너무 그립다.

아버지는 술을 엄청 좋아하셨다. 하지만 그때는 술도 돈도 흔치 않을 때라 아버지는 늘 독한 배갈을 마셨다. 오직 설날이 되여야만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래서 설날 아침이면 아버지는 상점에 달려가 맥주 한상자를 들어오신다. 그러면 어머니는 괜한 돈을 쓴다고 잔소리하지만 아버지는 일년에 한번뿐인데 괜찮다고 어머니를 구슬리군 한다.

지금 아버지가 계시면 여러가지 국내맥주뿐만아니라 러시아맥주 한국맥주까지 사드릴 수 있는데 정작 아버지는 계시지 않는다.

"효도 하려고보니 부모님이 계시지 않더라."

옛날 말이 그른데 하나도 없다.

이젠 살림도 펴고 수중에 남아도는 돈도 있어서 아버지가 계시면 너무 잘해드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버지랑 같이 사는 친구가 한명 있는데 얼마전 우리 아빠트로 세를 맡고 이사를 왔다.

"아버지도 혼자 계시고 너도 딸이랑 둘뿐인데 왜 따로 사냐?" 고 물었었다.

아버지랑 같이 사니 웬일인지 자꾸 다툰단다. 하찮은 일 가지고 부녀간이 늘 아웅다웅 다툰단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딸자식 키워 쓸모가 없다고 화내시고 딸은 딸대로 자기마음 몰라준다고 서러워한단다. 결국은 갈라져 살기로 하고 딸이 집을 나왔단다.

나로 말하면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사실 나는 늘 그 친구가 부러웠었다.

나는 다투려 해도 다툴 사람이 없고 짜증을 내도 받아줄 사람이 없고 억지를 부리려 해도 같이 억지를 부릴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나중에 아버지랑 다투었던 모든 순간이 후회로 남아서 앙금처럼 쌓이고 싸인다고 말해주고싶었다. 그리고 또 계시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릴거라고도 말해주고싶었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다행히도 얼마 안돼서 친구는 아버지의 집으로 도로 들어갔다.

"같이 안 사니까 혼자 계시는 아버지가 너무 걱정 되여 이틀에 한번씩 들러보군해. 그럴바엔 싸우더라도 같이 사는게 낫을것 같아.''

너무 잘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있을 때 잘해."라고 나중에 없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하나라도 잘해드리는 것이 맞는 것이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

따라서 오빠 집에 계시는 어머니도 너무 그립다.

청도가 멀다, 애가 과외한다, 시간이 없다, 이런저런 핑계로 어머니 뵈러가는 기회를 하나하나씩 자꾸 놓지고 있다. 래년엔 아니, 이후엔 매년마다 어머니 뵈러 가리다. 얼마 남지않은 어머니 여생은 내게 한으로 유감으로 남지 않게 말이다.

아버지처럼 돌아가신후 그리워하며 후회하지 않게 말이다.